한글, '세계가 함께 배우는 글'로 완성해야
“한글은 우리의 자존심...언어 주권이 곧 문화 강국의 첫걸음”

10월 9일, 한글이 창제된 지 579돌을 맞았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천재성과 애민정신이 집약된 인류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한글의 위상은 그 명성만큼 높지 않다. 세계가 찬탄하는 문자를,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점점 홀대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정책명과 기업의 홍보문구, 심지어 정부 주관 행사 조차 외국어로 뒤덮였다. ‘K-브랜드’ 열풍은 세계를 향한 자신감이라기보다, 정체성에 대한 불안의 반증처럼 보인다. 교육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외국어 합성어를 앞세우는 현실은 더 안타깝다. 정작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명은 소통이 아니라 장벽이 된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다. 우리 사고의 틀이며, 문화의 뿌리다. 언어가 사라지면 생각이 사라지고, 생각이 사라지면 정체성이 흐려진다.
프랑스가 자국어 보호를 위해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두고, 일본이 한자 표기법을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도 ‘국가언어위원회’와 같은 상설기구를 통해 공공언어 정책을 총괄하고, 언어 주권을 지켜야 한다.
교육 현장도 달라져야 한다. 국어는 여전히 입시 과목에 머물러 있다. 세종의 철학, 주시경의 언어운동 같은 한글의 역사와 가치가 교실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한글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담는 도구’로 인식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언어 윤리 교육도 시급하다. 온라인 공간의 언어가 사회의 품격을 결정하는 시대다.
세계 속 한글의 위상은 이미 높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해 문맹퇴치에 기여한 인사와 단체를 기리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문자교육 현장에서도 한글의 간결성과 체계성은 놀라운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이 흐름을 주도적으로 활용한다면, 한글은 단지 ‘민족의 문자’가 아니라 ‘인류의 문자’로 확장될 수 있다.
한글의 위상은 법과 제도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언어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외국어를 배워도 좋다. 그러나 그 위에 한글이 있어야 한다. 세계를 향하되, 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문화 강국의 자세다.
세종이 바랐던 '백성이 쉽게 익혀 서로 통하는 글'의 꿈, 이제는 우리가 그 뜻을 이어 '세계가 함께 배우는 글'로 완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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