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중국 唐(당)나라 사람 東方虯(동방규)가 지은 詩(시), ‘昭君怨三首(소군원삼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전해진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케 땅에는 화초 없어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스레 허리끈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날씬한 몸매 때문이 아니라네
시의 제목에 나오는 昭君(소군)은 王昭君(왕소군)을 말하는 것으로, 왕소군은 前漢(전한) 元帝(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嬙(장), 자는 昭君(소군). 원제의 후궁으로 있다가, BC 33년 匈奴(흉노)와의 화친 정책으로 흉노의 왕 呼韓邪單于(호한야선우)에게 출가하였다. 後漢書(후한서)에 의하면, 왕소군은 후궁이 된 뒤 몇 년이 지나도 원제가 찾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흉노에게 출가하기를 자청하였다고 한다.
원제에게는 후궁이 많아 그림으로 시중 들 여인을 골랐는데, 왕소군은 畫工(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자, 못생긴 얼굴로 그림을 그려놓아 간택을 받지 못하였다. 왕소군을 흉노에게 출가시키기로 결정한 후, 그녀를 처음 본 원제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 놓치기 아까워했다고 한다. 동시에 화공의 목숨도 단칼에 날아가버리고.
전설에 의하면 왕소군이 탄 가마가 한나라 국경을 지나갈 때,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가마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왕소군의 얼굴을 보고,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놀란 나머지 날갯짓을 잊어버려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마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를 落雁(낙안)이라 한다.
왕소군은 호한야의 아내가 되어 아들 하나를 낳은 뒤, 호한야선우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선우의 자리를 이어받은 復株累(복주루)에게 再嫁(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흉노의 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 시의 내용은 오랑캐땅은 꽃과 풀이 잘 나지 않는 황무지여서 봄철이 되어도 새싹이 돋고 날씨가 따뜻한 봄이 아닌데, 그 이유가 화초 때문만은 아니며 뒤늦게 봄이 와서 온통 봄빛으로 천지가 가득하더라도, 쓸쓸하고 고독한 처지에는 봄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허리끈이 느슨해져도 이는 몸매 때문이 아니며, 삶이 즐겁지 않아 살이 빠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하여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은 봄이 왔으나, 봄을 그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悔恨(회한)에 사무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박세철 경기도광주문화원·광주향교 고전·명리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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